한국의 꽃꽂이
기원과 발생:꽃꽂이의 기원이란 꽃꽂이가 예술 이전의 모습을 가질 때를 말하며, 그 목적이 미적 감상보다는 종교적인 면이 강하다. 예컨대 무당이 신을 청할 때 쓰는 신간으로 사용하는 꽃이나 나뭇가지를 말할 수 있다. 꽃꽂이 발생이란 종교적 목적을 가진 기원 단계의 꽃꽂이가 감상적 목적을 가진 예술로 이행하는 단계를 말한다. 한국 꽃꽂이의 기원은 불교와 같은 전래문화와 함께 외부로부터 꽃꽂이가 유입되기 이전에 이미 동북아의 고유문화에 뿌리를 둔 토착문화의 하나로서 꽃꽂이의 원초적인 형태가 존재하고 있었다. 기원 단계의 꽃꽂이는 식물을 꺾어 신을 청하는 통로로 사용하거나 신에게 바쳐 신에게 접근하는 방법으로 이용하였다. 이 시기의 꽃꽂이는 종교적 효용가치를 지닌 단계로 이의 흔적들은 단군 설화나 무당의 굿 등에서 살필 수 있으며 식물에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 손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토착문화의 자연 신앙에 기원한 꽃꽂이는 표현영역이 점차 확대되면서, 종교적 용도 이외에 감상의 대상으로도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불교의 전래와 함께 불전헌공화가 도입되면서 그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던 표현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한국 꽃꽂이의 역사에서 예술로서의 꽃꽂이가 발생한 시기는 고구려 시대 이전으로 보고 있다. 식물이 감상의 대상으로 표현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는 고구려시대 쌍영총 주실 북벽의 벽화이다. 주실 북벽의 벽화에서 종교적 용도가 아닌 장식 목적의 꽃꽂이 작품이 발견된다. 꽃꽂이가 벽화에 그려질 정도라면 일상생활에서는 이미 상당히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식물을 영적으로 간주하는 정령주의적인 사고에서 시작하여 식물을 꺾어 병에 꽂고 기원하는 풍속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것이 차차 미의 대상으로써 장식성을 띠게 되고 감상의 대상인 것과 종교적인 용도의 것으로 분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후로 우리의 꽃꽂이는 종교적 목적을 가진 분야와 감상 목적을 가진 분야로 나뉘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내려오게 된다.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시대적 특징: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는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과정에 있었으며, 후기에는 중국의 문화와 그것을 소화해 창출해낸 우리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를 이웃 일본 지역에 전파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불교의 수입 및 전달이었고, 특히 백제의 문화가 일본에 많이 전파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일본 이께 바나의 기원인 불전공화도, 이 테두리 안에 서 고찰될 수 있다. 삼국시대는 꽃꽂이가 장식적, 감상적 목적을 가진 분야로 발전하는 꽃꽂이의 발생이 이루어진 시대였다. 이에 따라 점차 일상생활 속에서 꽃꽂이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게 된다. 또한 이 시대에 불교가 중국을 통해 삼국에 전래하였으며 이 불교의 전 래와 때를 같이하여 불전헌공화도 전래하였다. 이것은 불교 의식의 일부로서 불전에 꽃을 바치는 것이다. 삼국시대 꽃꽂이의 가장 큰 특징을 이루는 주요 표현 양식은 첫째, 가장 큰 특징을 나타내는 선적인 표현 양식이다. 선적인 표현 양식은 선 중심의 구성으로 공간처리가 되어 있어 선과 공간의 미를 강조하는 표현 양식이다. 둘째, 양감적 표현 양식으로 이것은 좌우대칭의 공간 처리가 없는 구성이 대부분이지만 절충적인 표현 요소한 보이는 경우도 있다. 불전헌 공화는 나뭇가지의 섬세한 폭선미보다는 곳을 이용하여 공간을 가득 채운 형태를 할 수 있다. 대웅전처럼 배경의 그림이 강한 느낌을 주는 넓은 공간에 놓이기 때문에 멀리서도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양감적 표현이 주를 이룬 것으로 본다.
역사자료
고구려시대:5~6세기 고구려시대 쌍영총 고분의 주실 북벽과 동벽에 꽃꽂이 작품이 그려져 있다. 이 두 곳에 그려진 꽃꽂이 작품은 형태가 동일하다. 주실 북벽의 벽화는 피장 자(무덤에 묻힌 그 무덤의 주인)의 실내 생활상을, 주실 동벽의 벽화는 불교 공양을 올리는 사람들을 그린 것으로 꽃꽂이가 종교적인 목적과 장식, 감상 목적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발생 단계의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비천이 들고 있는 연꽃의 선과 그 배치에서 비대칭의 선적 표현 양식을 찾을 수 있으며, 연꽃 줄기 곡선에서 간결함과 유동감을 느낄 수 있다. 강서대묘의 현실 천정에는 왼손에 꽃잎이 담긴 그릇을 들고, 오른손으로 꽃잎을 뿌리며 하늘을 날고 있는 선녀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후일 산화의 표현으로 전개된다.
백제시대:6세기 백제 무녕왕릉에서 나온 금제관식들은 꽃나무와 초화를 거의 추상 적인 형태로까지 변형시킨 것이다. 왕관은 수목을 추상화시킨 문양을 사용하였고, 왕비관은 연꽃을 좌우대칭으로 화반에 꽂은 꽃꽃이 작품을 주상화시킨 문양이다. 이러한 금관이나 문양에서 절지형식의 입화 형 조형 양식을 볼 수 있으며, 이 입화 형식의 조형에는 한국 고대 자연증 배사 상의 흔적이 뚜렷하다. 또한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칠지도도 절지 형식의 입지 형태로 이것 또한 꺾은 나뭇가지가 추상화된 형태이다.
신라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이 막새기와 가운데에 항아리 모양의 큰 그릇이 놓여 있고, 거기에 꽃나무 가지가 꽂혀 있다. 그 나뭇가지가 병구에서 하나로 묶여 있고, 그 묶어진 줄기를 한 주먹 정도 노출하고 있는 이러한 방법은 일본 전통화인 릿까에 영향을 준 중요한 형식이다. 석굴암 십일면관세음보살 입상은 7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 십일면관세음보살입구상에 나타난 삼존 구성의 공화 형식은 비대칭이며, 비대칭적인 삼각 구성의 원초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그 시대의 우아한 정감과 미감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삼존 구성이란 중앙에 직립한 꽃을 중심으로 나머지 두 송이의 꽃을 각기 그 좌우에 배치하는 구성으로, 가운데 활짝 핀 꽃은 주존불이고 과주의 꽃은 주존불 좌우의 협시보살을 의미한다. 신흥사 돌 조각은 신흥사의 법당기단 면석 돌조각에 사각 구성 형태의 국화 공화가 새겨져 있다. 이 돌 조각은 화재 후에도 남아 대웅전 왼쪽 기단석축 모서리에 앞다리를 세워 앉아 있는 호랑이 조각과 함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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