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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훼장식기사

서양 중세시대의 화훼장식

by 트라오의 2022. 10. 10.

비잔틴(AD 4C~ 14C):동로마 제국은 콘스탄틴 황제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시작되었고, 서유럽 문화와는 다른 비잔틴(Byzantine) 문화라는 특수한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비잔틴은 비잔티움 도시국가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시대의 여러 모자이크를 통해 화훼 장식의 양식도 알 수 있다. 그 형태는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전통적인 형태들이 계속되었으며, 특히 좌우 대칭을 강조한 수직형의 원추 형태(비잔틴 콘 : Byzantine cone)가 발달하였다. 잎을 사용할 때는 새 깃털같이 위에서 아래로 점점 부피가 커지게 꽂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꽃이나 과일들이 나선형으로 돌려가며 디자인한 토피어리 형태가 유행하였는데 이것은 오늘날까지 이용되고 있다. 모든 문화는 교회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교회의 벽이나 천장에 장식된 정교한 모자이크나 프레스코에 이러한 디자인의 형태가 나타난다. 그리고 교회에 쓰인 대부분의 식물들은 의미가 있으며 상징적으로 꽂혔다. 즉, 장미는 성모 마리아의 꽃, 포도덩굴은 그리스도와 그 제자, 제비꽃은 겸손 등을 상징했다고 한다. 그리고 향기가 많이 나는 꽃들이 인기가 있었으며 주로 갈란드, 리스, 꽃다발, 방향제 등에 사용하였다.

로마네스크:로마네스크라는 뜻은 1824년 드 제르빌르와 드 코몽이 처음 사용했으며 일반적으로 로마풍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교회 건촉은 바실리카 교회 형식을 계승하여 발전하였다. 석조의 반 원통형 천장을 지탱하기 위해 피사의 대성당처럼 기둥이나 벽을 두껍게 하고 창이 작고 중후함이 있다. 로마네스크 시대에는 수도원이나 성의 정원에서 약용식물이 재배되었으며, 교회의 장식용으로 백합과 장미가 재배되었다. 화훼 장식은 교회나 국가 행사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깊이 들어와 있었다. 화훼 장식의 형태는 외곽선이 닫힌 갈란드, 리스, 대형 화분 식물, 구형 혹은 반구형의 디자인 등이 주를 이루었다. 그 외에도 타원형, 삼각형, 원형의 디자인도 제작되었다. 특히 건축물의 형태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꽃을 장식하였다. 꽃다발의 사용을 알 수 있는 그림도 발견되는데 라운드 형으로 꽃이 골고루 분포되어있었다. 꽃의 표정은 모두 밖으로 보이도록 묶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줄기를 모아 실로 묶어 고정하여 사용하였다.

고딕:고딕 시대에는 높고 내부가 복잡한 구조물이 건설되었으며 천장과 첨두형 아치, 스탠드 글라스로 장식된 좁고 긴 커다란 창문이 있어 경쾌하고 맑으면서 수직성이 강한 대성당이 건축되었다. 이러한 건축물을 중심으로 발달한 화훼 장식의 양식을 보면 수직적으로 솟구치는 형태를 많이 이용하였는데, 용기의 2~3배 높이로 날씬 하고 우아하며 존엄성을 갖추고 있었다. 금빛의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에게 수태를 알리고 있는 마르티니의 〈성 수태고지> 그림을 보면 가브리엘은 올리브 가지를 들고 화병에는 성모를 상징하는 백합 몇송이가 꽂혀 있다. 존엄성과 평온함, 하늘에 닿는 느낌을 나타내는 키가 크고 치솟는 느낌의 화훼 장식을 보인다. 화훼장식물의 종류나 양은 전 시대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고 형태도 단순해졌다. 종교적인 검소함이 강조되던 시기였으므로 사람들은 집안 장식을 위해서 화훼 장식을 사용하지 않았고 단지 교회나 성당의 단상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이탈리안 르네상스(AD 15C~16C):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시다는 고전 예술과 미에 대해 새로운 관심과 지식을 증대시킨 시기이다. 그리스, 로마 문명의 재생과 부흥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단순한 모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양식으로 계승, 발전시켰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훼 장식도 엄격한 대칭 디자인이었다. 과일과 채소를 함께 장식 하고 다양한 색깔의 꽃들을 이용하였다. 흰색의 릴리 한 줄기(마돈나 릴리)를 단순한 화기에 꽂는 방법도 널리 알려졌다. 화훼 장식에서도 그리스, 로마 시대처럼 연회나 축제 때에 갈란드,화관,산화를 사용하는 것이 다시 유행하였다. 건축물에 주로 사용된 장식 문양은 헬레니즘의 식물 문양을 기초로 발전하였으며, 잎이나 꽃을 추상화한 선적인 모양을 즐겨 사용하였다. 형태는 대칭형 삼각형, 원형, 원뿔형, 타원형, 화관, 갈란드와 같이 정형화된 좌우대칭의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꽃의 종류를 많이 사용하고 매우 화려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화기 안에 빈 곳 없이 꽃을 채워 줄기가 보이지 않게 디자인하였으며 가장 중요한 꽃은 제일 위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밝은색의 꽃과 풍만한 형태의 디자인은 르네상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유행하던 식물로는 백합, 튤립, 카네이션, 목련, 작약, 장미, 양귀비, 라일락, 스톡, 히아신스, 붓꽃, 매발톱꽃 등이 있다.
꽃의 아름다움 외에 꽃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중요하게 사용되었으며 특정한 감정이나 표현을 나타내기 위해 장미는 세속적인 사랑, 흰 백합은 순결 등의 특정한 꽃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이 시대의 화기는 금속용기의 사용이 처음으로 시작된 때이며 청동 항아리나 다리가 달린 금속 병, 도자기, 대리석, 주전자 같이 생긴 술잔, 토분 등의 다양한 재질의 용기가 사용되었다. 특히 뚜껑에 꽃을 꽂을 수 있도록 구멍이 나 있는 화기는 꽃을 고정할 수 있어 매우 획기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바로크 양식과 네덜란드(AD 17C):17세기의 바로크 양식은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옮겨온 젊은 화가들의 영향으로 발전하였다. 바로크의 용어는 '허세를 부리다' 혹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종종 사용되지만 예술사에서는 호화로움을 사랑하던 시대로 가장 화려한 시기 중 하나로 꼽힌다. 북유럽의 선교 국가들 중 네덜란드가 17세기에 경제적으로 크게 부흥하면서 중산층이 부를 획득하게 되었고, 화훼 장식의 수요도 많이 증가하게 되어 화훼 장식의 유행을 가져오게 되었다. 궁중 생활도 매우 화려하였고 내부도 사치스럽게 장식하였으며  화훼장식품도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런 공간이 더욱 돋보일 수 있도록 대 온실이 있어 향기로운 오렌지나무와 궁중 장식을 위한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키 졌으며, 이 식물 중 일부는 주방의 요리 재료로도 사용되었다. 특히 영국의 경우 난방이 필요 없는 몇 달 동안 벽난로를 꽃으로 채워 두는 풍습이 있었는데 벽난로 안에 꽃을 담는 용기를 바우팟(Bough pou)이라고 불렀다. 이 시대에는 해상무역을 통해 멀리 동쪽 국가들로부터 새로운 이국적 식물인 선인장, 국화, 해바라기, 튤립 등이 수입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소재가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이 시기의 특징적인 화훼 장식은 많은 종류의 꽃을 가득 채워 매우 화려하게 타원형으로 디자인된 더치플래미시 양식이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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